수강생 후기

[수강후기]

아놔, 내 실력이 고작 이 정도라니...

  • 지*경
  • 2024-11-28

유튜브가 알려준 속기사

 

정말 우연하게도 유튜브 쇼츠에 속기 영상이 뜨면서 나는 속기사란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맨날 영화 결말포함 리뷰나 보고 재즈음악 틀어놓거나 고양이 영상 보는데, 어떻게 그 영상이 추천이 된 건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내가 처음 속기사를 한 번 해 보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너 이거 10년 안에 쇼부봐야 한다, 이거 곧 사라질 직업이다, 잘 생각해라 마라 말이 많았다. 무시 못할 키보드 가격도 망설이는 데 한 몫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기술"을 익혀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사실, 영화처럼 처음부터 자막이 입혀져 나오지 않는 이상 모든 영상을 실시간으로 쳐야해 같은 영상이 재방 될 때마다 속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말해, 어차피 수요는 계속 있겠다 싶었다, 비효율적인 과정이지만.

 

이미 마음이 쏠려 있는데 협회 상담까지 받으니 확신이 섰고, 그래 이북 처음 나왔을 때 종이책의 종말이니 말들 많았지만 봐라, 지금 종이책이 그래서 사라졌는지 라며 하나의 경쟁력이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 졌다.

그리고 비단 자막 작업 뿐만 아니라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에 쓰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계속 관련 글들을 찾아보면서 나는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내가 하기 나름이야. 블루오션은 없다구.

 

그렇게 나는 키보드를 손에 넣었고, 곧 1년째가 된다.

 

 

독학의 시작

 

처음에는 신나게 시작했다. 키보드 사기도 전에 가입했던 카페에서 이런 저런 정보도 읽은 상태였고 빨리 일반 키보드 처럼 날아다니며 타자를 치고 싶었다. 자리연습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소리자바 마술사의 게임이었는데,

"떳다여왕벌"만 나오면 그냥 게임 끝나기도 했다. 

 

 

카페에서 키보드 도안을 다운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도장을 파고 자료실에 있는 연설체, 논설체를 다운받아 빨리 칠 수 있게 약어부터 검색해서 표기를 했다. 사전을 검색하면 그와 관련된 글자들이 많이 있으니 막 한꺼번에 외워야 하나 싶고 조바심이 나고 그런다. 하지만 일단 지문에 나오는 것 부터 처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약어를 외워갔다.

 

약어도 몇 장 기입하고 나니 패턴이 보였다. 자음만으로 된 것, 모음 섞인 것, 관련없어 보이는 것.

그러다보니 듣고치다가 이 단어는 이런 약어가 아닐까 혼자 예상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독학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독해야 하는 거.

하는 날도 있고 안하는 날도 있고, 괜히 게임이나 몇 판 하고 나서도 나 되게 뭐 한 것 같고.

그런 기분으로 지지부진 시간만 보냈다. 

 

 

어차피 나만 잘 하면 돼

 

그러다 여름에 시험을 한번 치러 갔다. 들리는 데 까지만 한번 쳐 보자란 마음으로.

150자 즈음에서 하기도 싫어지고 진도도 안나가고, 그래 이쯤에서 긴장감 한번 줘야지. 실전감각도 익힐 겸.

 

...그러고 시험 날 USB 안가져간 사람, 그게 저에요.

아주, 정신머리 좀 봐라.

그냥 집에 가야하나 보다 싶어, 수험생은 포기하고 느긋한데 감독관이 땀 뻘뻘 흘리며 가슴졸이는 이상한 상황;

협회 감독관께서 뛰어다니며 구해주셨다. 심지어 연결이 안돼 다시 가져다 주시는 수고스러움을...

그 때 제대로 인사 못했는데, 고맙습니다. 제가 블루투스로 연습을 해서 그만...

 

그래서 시험은, 한 세줄 치고 나왔나?

 

심각성을 느꼈다. 옆에서 와다다다 치는 소리가 들리니 막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들고 깨진 글자만 쳐 대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게 시험의 약발이 또 내게 원동력을 주었다.

 

 

그리고 수업을 듣다

 

그런데 180자, 190자에서 정체가 왔다. 원래 계획은 200자 듣고치기가 될 때 수업을 한 번 들어볼 생각이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200 단위의 시작이니까?

사실,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수강료도 비싸니까. 자료실에 있는 자료들도 많은데 아직 내가 혼자 연습해도 되는데 라는 생각에 제대로된 학습방법도 익히지 않고 도장깨기 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안되니까 안하게 되고 안하니까 더 안되고의 도르마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수업을 신청함.

 

나름 180자 까지는 연습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테스트를 해 보니 130자에서 버벅거렸다. 

와우. 난 뭘한거지.

난 연습해서 외우고 치는 걸 잘 했던거다. 익숙한 단어만 잘 친거다.

그렇게 나는 크게 당황을 하고 120자로 실력을 내려 수업에 들어갔다.

아, 단순히 자료실에 있는 자료 이제 잘 친다고 해서 그게 내 실력이 아니구나 싶었다.

몰랐다. 그렇게 도장깨기하면 마치 그게 내 실력인 것 같으니까.

나는 수업듣기 전까지 내 실력이 180은 되는 줄 알았다.

첫 수업에 바로 알았다. 아, 이래서 수업을 듣는구나. 내가 너무 더디게 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리고 첫 수업에서, 손이 키보드에서 너무 통통 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응? 그럼 뭐, 어떻게 치는데 싶었다. 심지어 패스도 못함.

타자만 신경썼지 내가 어떻게 자판을 누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back키 사용에 대한 지적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이건 단계가 올라갈 수록 back 키 칠 시간이 없어 자연스럽게 해결됨ㅋ

 

 

수업을 듣고 달라진 연습패턴

 

사실 수업 한 타임이 너무 짧아 아쉽긴 하다. 여전히 수강료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꾸준히 들으면 실력이 금방 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한 달간 수업 들으면서 매번 패스하겠다는 목표로, 수업이 끝날 때 200자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아쉽게도 나는 두 번의 실패 끝에 결국 170자를 넘지 못하고 종료됐지만.

 

그런데 수업을 들으며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오전에 테스트가 있으니 손을 풀기 위해 새벽부터 약어치기 오타치기 보고치기를 연습하고 접속했다. 그야말로 의지는 돈으로 살 수 있다를 체험함.

 

그리고 마지막 강사님이었던 이안쌤이 마지막 날 알려준 팁이 도움이 많이 됐다.

약어치기 > 오타치기 > 보고치기 > 사설치기 > 듣고치기 > 다시 약어치기로 반복학습을 하라고 알려주셨다.

하나에 너무 시간을 투자하면 나머지는 안하게 되니까 패턴을 돌리라고 했다.

 

아, 맞네. 사소해 보일 수 있는데, 나는 이렇게 알려줘야 안다. 

하루에 얼마나 연습을 하냐는 물음에 어.. 뭐.. 그냥 틈나는 대로.. 이렇게밖에 답하지 못했는데 이것도 개선했다.

 

 

패턴의 반복까지는 못했지만 빠짐없이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다던, 하지만 나는 안하던 오타장을 만들었다. 대충 내가 틀리는 단어들로 문장 만들어서 한번 연습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한바퀴 돌린다.

 

이렇게 해 보면, 내가 그동안 연습을 얼마나 안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얼마나 막연하게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하루에 얼마나 연습하세요? 라고 묻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뭉뚱그려, 좀 해요 라고 답하며 그렇게 시간만 또 죽이고 있었을 테다.

 

 

수업을 듣고 난 후 나의 생각

 

그래서 수업은 꼭 필요하다.

여력이 되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강의를 나에게 유익하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수업을 한번 들어보면,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계획을 세우기가 용이해 진다.

 

카페에도 보면, 처음부터 수업과 함께 한 사람, 150자에서 시작한 사람, 200자에서 시작한 사람 등 다양한데 각각의 장점이 다 있다. 처음부터 했다면 연습방법과 잘못된 습관이 들기 전에 바른 길로 인도받을 수 있었을 테고, 나처럼 중간에 들어왔다면 해이해진 마음을 바로잡고 긴장을 불어넣어 삶이 갑자기 타이트해진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마도 고급반으로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나름의 고충과 노하우를 바로 전수 받을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12월까지 자료실 200자 연설문, 논설문을 독학으로 마스터 하고 1월에 다시 170자 부터 도전하는 것으로.

나는 징검다리 작전이다.

 

혹시 막연함에 수업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활용하는 케이스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어쨌든, 한번은 들어봐야 한다. 내가 깨져 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럼, 쌤, 1월에 만나요.